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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죽음을 아름답게 화장해주는 여자 정사분

충청복지신문 2005. 10. 14. 22:34
"죽음을 아름답게" 시신에 화장해주는 여자, 정사분




[조선일보 류정, 유창우 기자]

‘시체에 화장을 해 주는 여자’. 그녀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 입을 찡그렸다. 핏기 없는 살가죽, 그리고 썩은 내, 혹은 참혹하게 죽어간 붉은 흔적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거기에 ‘메이크업’이라니 어쩐지 소름이 돋을 만하다. 정사분(58·경기도 하남시)씨는 이렇게 말한다. “가는 길이 아름다워야 가족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思粉, 생각을 하며 화장을 하는 여자 이야기.

시신 메이크업 봉사 5년째. 주로 한국에서 숨진 외국인 노동자의 얼굴을 곱게 분한다. 정해진 주기는 없다. 죽음이 계획된 건 아니니까. 정씨는 5전 6기 끝에 지난 4월엔 미용사자격증까지 땄다. 주위에선 “다 늙어서 웬 미용사냐”고 했다. “돌아가신 분 얼굴을 꾸며주고 나면 늘 헝클어진 머리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얼마 전엔 단칸방에서 쓸쓸히 숨진 30대 필리핀 여자를 곱게 치장했다. “미용학원에서 배운 신부화장을 해줬지요. 틀어 올린 머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우리에게 ‘시신 메이크업’은 낯설다. 임종 후 영안실에 안치되고 염을 할 때를 제외하면 가까운 사람조차 더 이상 고인을 볼 기회가 없다. 서양에선 관에 누운 망자 얼굴을 직접 보고 이별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공황 상태에 빠져요. 화장을 해주면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보건대 장례지도학과 01학번인 사분씨는 졸업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자주 학교를 찾는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와 자매결연해 피부색 다른 망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모교에 보탬을 주고 싶어서다. 다니는 성당에서 부탁이 오면 또 주저 않고 나선다.





그녀에게, 불행은 익숙하다. 1987년 정월 초하루, 성묘 가던 길이었다. 그녀가 탄 자동차가 중앙선 넘은 트럭과 정면충돌했다. 겉은 멀쩡했다. 속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비장이 터져 피가 뱃속으로 고이고 있었다. 병원에선 다 살았다고 했다. 비장을 떼어내고 혈관은 남의 피로 채웠다. 그리고 살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골병이 났다. 우울증도 찾아왔다.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여러 번.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사고 전엔 쓸개에 생긴 돌을 떼느라 두 번 배를 갈랐었다. 산다는 게 억울했다가, 짜증났다가, 우스워졌다. 3년 동안 한강을 찾았다가 등을 돌린 일, 헤아릴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살린 건 남편 김행수(60)씨. “우리 애들 장가보내고 같이 가재. 저 숙제 나한테만 맡기고 가면 어떡하노….” 무모하고 싶어도, 가족을 생각하면 용감해졌다. 지금 가는 길도 남편이 인도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사분씨. 1995년 텔레비전에서 만학도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본 행수씨가 주부학교인 한림여자중학교(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아내를 등록시켰다. 못 배운 공부 실컷 하고 마음대로 살라고.


“여자는 이름 석자 쓰면 됐다”는 아버지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어야 했던 사분씨. 늦게 배운 공부는 재미있었다. 영어·수학이 수월치 않아 학원도 다녔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쉼 없이 달렸다. 내친김에 대학까지. 무슨 과를 갈까. 장례지도과가 있었다. 시신위생처리법부터 심리학까지 ‘죽음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는 과목들이 끌렸다. 가까스로 되살아난 두 번째 인생, 산 자와 이별하는 죽은 자를 돕고 싶었다. 예전엔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이젠 잘 죽는 게 더 중요했다.







입학 6개월 만에 처음 시체를 봤다. 썩은 시체와 역한 포르말린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리고 다시 우울증. 일주일간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택했을까, 후회도 했다. 그때마다 아들 또래의 황규성(34) 교수의 진지함이 흐트러진 사분씨 마음을 다잡게했다. “누가 나를 끔찍하게 쳐다보면 어떻겠어요. 산 사람이라 여기고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죽은 이에게 말 걸고 위로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다 객지에서 외롭게 운명하셨나요. 부디 다음 세상엔 가족 곁에서 잠드세요.” 사분씨는 이제 자신의 이름이 왜 ‘思粉(생각하며 화장한다)’인지 알게 됐다.





남편 행수씨. 그저 아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순둥이 이발사 남편은 어려운 이웃에게 27년째 무료이발봉사를 해오고 있다. 세 아들과 사분씨를 데리고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노숙자를 시도때도 없이 찾아 다닌다. 보는대로 배운다고 벤처기업에 다니는 큰아들도 봉사를 위해 10년 전 이발자격증을 땄다. 행수씨는 정월 초하루만 되면 아내에게 큰절을 올린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저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부부는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 중이다. 수의로 쓸 고운 개량한복을 한 벌씩 맞춰 놨다. 고운 얼굴로 아이들과 인사하고 맑은 몸으로 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되면 나무 아래 뿌려져 거름이 되고 싶다. 산 사람에게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에.


(글=류정기자 well@chosun.comcanyou.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출처 : Feelshop 그리움이 머무는 쉼터 |글쓴이 : 酒想v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