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섹스, 현실의 섹스
섹스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하는 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첫 섹스의 순간. 첫 섹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처음으로 섹스를 경험한 순간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그건 불문율이다. 그러나 그 ‘첫 섹스’의 순간은 사실 많은 이에게 ‘기대 이하’로 평가되기도 한다. 섹스를 경험하기 전까지 갖고 있던
무수한 환상들. 그 환상이 가차 없이 깨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섹스는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상의 섹스와 현실의 섹스는 엄연히 다른 것이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둑질도 할수록 늘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
섹스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차츰 그 즐거움을 터득한다. 그렇게 섹스의 맛(?)을 터득한 이들은 각종 미사여구로 섹스를 예찬하고,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평생 동안 섹스의 즐거움을 모르고 죽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로 생각될 만큼 섹스는 멋지고 아름다운 행위로 느껴진다.
죽을
듯 사랑해서 서로가 아무런 제약 없이 태어난 그 상태에서 나의 모든 것을 상대의 모든 것으로 넘겨버리는 행위, 상대의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는
기술에 뜨거운 열정이 결합되어 연속으로 오르가슴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 그런 것이 섹스란 거다. 단순히 벌거벗은 남녀의 결합이나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 섹스는 아니다. 분명 섹스는 그 이상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상과 기대를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섹스를 하진 않는다. 죽을 만큼 사랑해서 미친
듯이 서로를 탐닉하는 섹스? 그런 섹스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생활의 일부분으로서의 섹스가 더 현실적이다.
섹스를 하며
등에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오럴 섹스를 할 때 가끔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며, 입으로는 괴성을 지르면서 머릿속으로는 방송 중인 드라마에
대한 아쉬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점점 섹스는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뜨겁고 멋진 섹스는 먼 얘기가 된다. 가끔 섹스란
것이 상당히 별 볼일 없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굉장히 추하고 불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섹스가 끝나고 같이 숨을 고르고, 쓰다듬어주며
평화로운 마음이 아니라 ‘쪽팔리고’ 후회스러운 느낌이 들 때, 만족감이 아닌 공허함을 가져다줄 때… 당신들도 그런 경험들 한번쯤 해보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노골적인 그녀
얼마 전 소개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둘 다 애주가라는 사실에 기뻐 둘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거니 받거니 꽤 많은 술을 마셨는데, 그녀가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술집을 나서자, 그녀가 내게 기대왔다. 비틀대는 여자를 부축하며
“택시 태워드릴게요” 하니 굳이 안 간다고 싫다고 버티는 거다. 계속 택시 타길 거부하는 그녀에게 혹시나 해서 “그럼 모텔이나 갈까요?” 하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가겠다고 한다. 처음 만난 여자가… 그땐 나 역시 얼씨구나 웬 떡이냐 하며 모텔로 직행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정신이 들고 나니, 그녀도 나 자신도 너무 추해 보였다. - 김인성(가명), 28세, 파이낸싱 어드바이저
나는 섹스 도구?
자취를 하는 남자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 가는 편인데, 단 둘이 있다 보면 그는 으레
섹스를 요구한다. 한번은 행사 중이어서 안 된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나를 계속해서 조르는 그에게 못 이겨 섹스를 하고 말았다. 생리 중 섹스는
여자 몸에 안 좋다는 얘기가 있다는 말까지 했는데, 그는 내 건강보다는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었나 보다. 침대 시트가 더럽혀질까봐 바닥에 수건을
깔았고, 섹스가 끝난 후 수건에 묻은 혈흔을 보자, 내 자신이 섹스 도구로 여겨져 수치심에 눈물이 확 났다. 영문을 몰라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미웠다. - 임선영(가명), 23세, 대학생
지우고 싶은 섹스의 기억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생생히 기억 나는 섹스가 있다. 너무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인데도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고, 그러기에 더욱 후회스럽다. 대학교 시절 나이트에서 부킹을 하게 되었고, 2차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졌고, 그는 내게 피곤하니 쉬고 가자고 했다. 물론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날따라 내
판단력이 흐려지고 말았다. 처음 만난 남자와의 섹스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술에 취해
발기도 안 되던 그가 기어코 섹스를 하겠다고 온갖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나 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한은정(가명), 26세, 번역가
영화 속 섹스는 어려워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야외 섹스가 나오는데, 굉장히 스릴 있어 보이고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꼬여내 밤에 시외에 있는 놀이동산 주차장에 갔다(그곳이 카섹스하기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
시간인데도 드문드문 차가 주차되어 있기에 다들 카섹스 중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와의 섹스를 시작했다. 서둘러 바지를
벗고 막 삽입하려는 순간, 환하게 비춰지는 헤드라이트에 깜짝 놀랐다. 한 대의 차가 우리의 섹스 장면을 목격하고는 라이트를 깜박거리고, 클랙션을
울려대는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었다. 너무 화가 나 쫓아가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그 차는 쌩하니
주차장을 빠져나간 후였다. 여자친구는 부끄러워서 죽고 싶다며 내게 화를 내고 다시는 카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최호준(가명),
25세, 웹 프로그래머
내 머리 잡지 마!
오럴 섹스 싫어하는 남자 없겠지만, 예전에 사귀던 남자친구는 그 수위가 좀
심했다. 오럴 섹스를 너무 좋아했고, 전희로서의 오럴 섹스가 섹스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나도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니까 오럴 섹스를
해주는 것에는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지만, 가끔은 턱도 아프고 아무런 필도 오지 않는데 계속해서 오럴 섹스만을 요구할 때는 넌더리가 났다. 그에게
무릎을 꿇은 나 자신이 너무나 천하게 여겨지고, 내 머리를 붙잡고 억지로 아래로 밀어넣는 그가 너무나 추하게 느껴져 머릿속으로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 진희연(가명), 29세, 회사원
트라우마가 된 사건
물론 머리로는 안다. 우리의 부모님도 섹스를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막상 부모님의
섹스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가 일찍 끝나 집에 들어섰다가, 부모님의 섹스 장면을 실수로 목격하게 되었다.
부모님도 당황했지만, 나의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대로 문을 닫고 한달음에 뛰어서 다시 학교로 갔다.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부모님께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굴었지만, 그 모습은 내가 커갈수록 머리에 계속 남았다. 물론 부모님이 섹스를 해서
내가 태어난 거겠지만, 왠지 부모님의 섹스 장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섹스였다. - 이상호(가명), 31세, 레코딩 디렉터
환한 불빛은 No
여자들은 섹스할 때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경험했다. 매번 불을 끄고 섹스를 했었는데, 남자친구가 불을 켜자며 몇 번을 졸랐다. 색다른 경험이 되겠다 싶어 오케이 했는데,
스탠드 하나가 아니라 형광등을 환하게 켜고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호기심에 눈을 떠봤더니, 그가 내 위에서 찡그린 얼굴로
헉헉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그의 뱃살은 출렁거렸다. 순간 기분이 확 깨고, 분위기는 사라져버렸다. 그를 밀쳐내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어서 갑자기 몸이 아파서 그렇다고 둘러댔지만, 사랑으로 모든 것이 감싸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사랑은 겨우 이 정도였나 보다. 앞으로 다시는 환한 불빛에서 섹스하지 말아야지. - 김영은(가명), 29세, 헤어
디자이너
사랑 없는 섹스는 추하다
남자들은 으레 군대 가기 전 행사로 집창촌에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첫
섹스의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군대 가기 전 선배들과 함께 술을 진탕 마시다가 내게 선물을 준다며 집창촌으로 향했다. 호기심
반으로 따라갔지만 영 석연치 않았다. 5분도 안돼서 나의 첫 섹스는 끝이 났고, 요구르트를 마시며 선배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 시간이 너무나
괴로웠고, 사랑 없는 못난 섹스는 하지 말겠다고 다짐했다. - 황재환, 32세, 인터넷 쇼핑몰 마스터
할 일 없어요?
환한 대낮에 모텔 앞을 지나가는데, 번호판을 가리고 빽빽이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볼
때 참 추해 보인다. 그렇게 할 일들이 없나… - 전예환, 27세, 영어 강사
너희 변태 아니니?
2년 전쯤, 자취하는 친구가 있어 그곳을 우리의 아지트로 삼아 종종 새벽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그 날도 대 여섯 명 정도의 친구들이 술을 잔뜩 마시고 그 좁은 8평짜리 원룸에서 다닥다닥 붙어 잠이 들었는데, 워낙 잠귀가 밝은
나는 문득 어떤 소리에 잠이 깨었다. 잘 들어보니 섹스 하는 소리였다. 살이 부딪히는 소리, 섹스 특유의 질퍽한 소리. 정말 잠이 확 달아나며,
소리의 주인공인 커플에게 정이 확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섹스가 끝날 때까지 계속 자는 척하고 가만히 누워있었지만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고,
다음날 그 친구들의 얼굴이 뻔뻔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급했나? - 권서연(가명), 24세, 웨딩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