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복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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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구명 서명사이트:
사진 : 윈난(雲南) 신장병 병원 홈 페이지 이틀 만에 두 차례 신장 이식, 신장 출처 관심 끌어 【한국대기원
5월 21일】 최근 베이징 하이뎬(海淀) 병원에서 ‘48시간에 두 차례 신장 이식, 22만 위안과 생명이 모두 물거품’ 된 쉐옌린(薛燕林) 사건이 언론에 알려졌다. 특히 수술을 집도한 의사 한슈우(韓修武)가 어떻게 이런 짧은 시간 내에 쿤밍(昆明)에서 살아 있는 신장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은, 윈난에 파룬궁 수련생들을 감금한 장기 적출 강제 수용소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틀 만에 두 차례 신장 이식, 22만 위안 날리고 끝내 사망 2006년 5월 17일 ‘화샤시보(華夏時報)’는 ‘48시간에 두 차례 신장 이식 22만 위안 날리고 끝내 사망’이라는 소식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요독증을 앓고 있던 안후이(安徽) 푸양(阜陽)의 쉐옌린(49세)은 2004년 12월 19일 베이징 시 하이뎬 병원 장기이식센터에 입원했다. 9일 후인 12월 28일 오후, 이식 센터 담당의사는 외지에서 신장을 가져왔으며 혈액형과 PRA(Panel Reactive Antibody) 검사가 모두 일치했다. 그날 저녁 10시 10분, 쉐는 수술실에 들어갔고 밤 11시 무렵 한슈우는 네이멍구(内蒙古) 츠펑(赤峰)에서 돌아와 서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 4시간 후 쉐옌린은 수술실에서 나왔고, 한슈우는 “수술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9시, 초음파 검사 결과 신장 이식이 실패했다고 확정 지었다. 쉐옌린의 남편인 루샤오싱(盧曉星)은 “당시 환자의 신장을 적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슈우가 당일 쿤밍에 가서 수술을 해야 했고 그 곳에 신장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30일 다시 다른 신장을 가지고 왔고 그때 직접 환자의 신장을 적출하고 다시 새 신장으로 이식했다.”라고 말했다. 12월 30일, 쉐옌린은 심장병 발작으로 응급조치를 받았다. 밤 11시쯤, 한슈우는 신장을 가지고 쿤밍에서 돌아왔다. 12시 한슈우는 쉐예린에게 두 번째 신장 이식 수술을 실시했으나 수술실을 나서며 심한 거부 반응 때문에 신장 이식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에는 이런 현상에 부딪힌 적이 없다고 했다. 수술 후, 쉐옌린은 급성 췌장염과 폐렴 합병증이 나타나, 하루 5천 위안의 특실에 입원했으며 욕창이 생겨 루샤오싱이 매일 가래와 대변, 등에 찬 땀 등을 처리해야했다. 루샤오싱은 분개하며 “당시 아내가 이미 기력이 없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보고는 내 팔을 잡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기억했다. 2005년 1월 30일, 수술받은 지 30일 후에 쉐옌린은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떠났다.
장인 장모가 딸에게 쓴 추도사를 들고 있는 쉐옌린의 남편 22만 위안의 의료비를 지불했음에도 아내가 사망하자 루샤오싱은 분노했다. 그는 진료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병원 측의 4가지 과실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루샤오싱은 하이뎬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여 하이뎬 병원 치료비와 정신적인 배상, 장례비 등 총 60만 위안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루샤오싱에 따르면 병원의 과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다. 1) 전문가들은 신장 이식을 하기 전 조직검사에서 반드시 혈액형, PRA 검사, 크로스 매칭 검사 및 조직 적합성 항원(HLA) 검사 등 적어도 4가지 검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베이징 하이뎬 병원은 앞의 두 가지 항목만 검사하고 크로스 매칭 검사는 아예 실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신장 이식에 실패한 첫번째 원인이다. 2) 두 번째로 신장 이식 수술을 시행하기 전에, 환자의 PRA가 72.5%에 달했지만, 의사는 환자에 대한 신장 이식 수술을 감행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PRA가 30%~40%정도에 이르면 신장 이식을 권하지 않는다. PRA가 72.5%에 달했다면 이미 80%에 근접하여 수술 금기증에 가까운 것으로 쉽사리 심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 사람이 죽게 된다고 말한다. 3) 첫 번째 신장 이식 수술을 실패했을 때 못쓰게 된 신장은 마땅히 제때에 적출해야 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매번 신장을 이식할 때마다 환자는 총 1만 5천 위안의 비용을 지불한다. 비록 의사는 다른 사람이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돈을 주고 사들인 것임을 알 수 있다. 4) 장기 이식 센터로써, 하이뎬 병원의 수술 전후 간호가 너무 부실했다. 그들은 이식 전문 기술 자격이나 허가가 없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수술 시 환자의 PRA는 72.5%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식 수술을 할 수 없다. 보고서에 적힌 일련 번호 04-0076은 2004년에 76명이 이런 조직적합 테스트를 받았다는 의미일 것. 1심 조사와 루샤오싱의 변호사인 류루이솽(劉瑞爽)의 소개에 따르면, 하이뎬 병원은 ‘하이뎬 병원 이식 센터 전용규정’을 사용하지만, 이식 센터는 베이징 시 위생국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았고 이식 수술 자격도 없다고 한다. 그들이 하는 이식 수술은 불법 의료 행위이며, 수술 중 병원에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료 규정조차 위반했다. 이 사건은 심각한 의료 월권 사고이다. 불투명한 신장 출처 대륙의 한 네티즌은 “하이뎬 병원이 신장을 구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콩팥을 파는 것 같다. 첫 번째 신장은 9일 걸려 찾아냈고, 두 번째 신장은 직접 쿤밍에 가서 가져오면 그만이었다. 300-400명 중에서 하나 정도 찾을 수 있는 수술 가능 신장을, 한슈우는 마치 신장 자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조직검사도 하지 않고 바로 이식했다. 마치 쓸 수 없는 것은 쓸 수 없는 것이고, 쓸 수 없으면 바로 없애는 것 같은 태도이다.”라고 비평했다. 대기원 4월 7일 ‘2천5백 위안이면 신장을 살 수 있다’는 독자 투고에 대륙 모 신장 이식 대화방에서 흘러나온 한 토막을 폭로했다. 2004/12/1506:23pm 네티즌 수보리(须菩提)는 ‘나는 상하이 창정(長征) 병원에서 이식 수술을 한 지 1년이 된다. 그 곳에는 신장이 아주 많았다. 나는 2달 반 동안 투석을 하고 신장 이식을 할 수 있었다. 철도 총병원 신장 이식과에 가서 한슈우 주임을 찾아라. 그는 많은 신장을 확보하고 있고(그는 윈난성 신장병 병원과 오래동안 협력해왔다), 윈난에도 많은 신장이 있다.’고 말했다. 윈난에 신장이 많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얼마 전 ‘희망의 소리’ 라디오 방송에서 상하이 중산(中山) 병원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가족이 중산 병원에 두 개의 신장 공급 기지가 있다고 폭로한 보도가 있었다. (녹음) ‘내가 알기로는 윈난과 후베이(湖北)지역이다.’ ‘윈난에서 이곳까지는 비행기로 겨우 2시간이면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장이 매우 신선하고 상하이 병원도 사람을 보내 직접 수령한다. 그들 쪽의 화학 실험이 매우 엉성하기 때문에 조직 검사를 하면 병원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슈우 혼자 400여 건의 수술을 집도
기자가 한슈우에 관한 보도를 찾아보니(지금 이 웹사이트는 이미 폐쇄되었다) 위와 같은 자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2004년 3월 6일 ‘경제참고보’에 한슈우에 대한 특별 보도가 있다. 기사에서는 1964년 안후이(安徽) 리신(利辛)현에서 태어났고 1996년에 쿤밍에서 최초의 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한 이래 지금까지 400여건의 신장 이식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세심한 독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베이징의 한슈우가 어떻게 쿤밍으로 가서 이식 수술을 하는가, 게다가 쿤밍에서 신장을 가지고 올 수 있는가? 한슈우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이뎬 병원 홈 페이지에 실린 소개에 따르면, 이 ‘장기 이식 센터는 2003년 1월에 설립되었고 한슈우를 초빙해서 신장 이식과 주임을 맡게 했다. 한 주임은 여러 해 동안 신장 이식, 췌장 이식 임상과학 연구 일에 종사했으며 미국 미네소타 대학 장기 이식 센터와 미국 피츠버그 장기 이식 센터에서 연수를 받았고 베이징 자오양 병원 및 통롄 병원의 신장 이식 수술을 주관했다. 현재, 하이뎬 병원은 이미 100여 건의 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한슈우는 안후이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1988년 베이징 자오양(朝阳) 병원 방사선과에 배치되었다. 1995년 장기 이식 전문가 관더린(管德林)의 조수가 되었고, 그 후 아주 빨리 단독 집도의가 되었다. 2003년 말에는 하이뎬 병원에 가서 장기 이식과를 만들었고,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하이뎬 병원에서 38건의 신장 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평균 2~3일 마다 한 건의 신장 이식 수술을 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슈우는 자신의 다음 목표는 간 이식 수술이라고 말했다. ‘간 이식은 신장이식과 아주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신장을 구할 때면 나는 자주 간을 구해 다른 의사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고 게다가 미국에서 전문적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이 말이 천기를 누설했다고 평론한다. 왜냐하면 그는 ‘장기 기증자’로부터 신장을 구할 때 간도 함께 구했다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대담한 ‘장기 기증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간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통간이식수술은 보통 뇌사자의 장기 외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 주목할 것은, 한슈우에 관한 보도 내용은 이미 차단되었지만, 기자는 인터넷 스냅 사진에서 과거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윈난 신장병 병원 홈 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이식 센터 명예 원장은 베이징 자오양 병원의 관더린, 부원장 겸 이식과 주임이 리궈빈(李國斌)으로, 자오양 병원 비뇨기과에서 수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한슈우가 쿤밍에 가서 신선한 신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이들이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윈난 신장병 병원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이식 센터 명예 원장이 베이징 자오양 병원의 관더린이며 부원장 겸 이식과 주임이 자오양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리궈빈이다. 윈난 부 진장(鎭長) 채혈로 죽어 그렇다면 윈난에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신장이 있을 수 있는가? 국제추적조사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윈난은 파룬궁 수련생 장기 적출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명혜망 2001년 보도에 따르면, 33세의 윈난 젠수이(建水)현 린안(臨安)진 부 진장인 쿵칭황(孔慶黃)은 윈난 대학 경제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4월 다른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현 간수소에 수감되었다. 쿵칭황의 부친은 아들이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절명했다. 쿵칭황이 체포된 후에도 계속 단식으로 항의하자, 간수소에서는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2000년 8월 25일, 쿵칭황은 강제로 현 병원으로 끌려갔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서 매일 두 통씩 채혈을 당했고 대량의 채혈로 인해 신체는 급속도로 망가졌다. 9월 3일 쿵칭황이 죽었을 때, 그의 피부가 누렇게 변색되어 외부 사람들은 모두들 중독 반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1개월 동안 계속된 대량 채혈의 결과이다. (사진 출처:인터넷 사진) 원화(文華) 종합 보도 중문: http://www.dajiyuan.com/gb/6/5/19/n1323217.htm 김학철구명 서명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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