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복지신문
[스크랩] [정명순] 독주 본문
독주/정명순
창문으로 눈발이 달려든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눈발은 제 무게로 고스란히 쌓이고
옴싹 달싹 못하는 잔가지는
휘청거리며 가늘게 신음을 낸다
신음은 기이한 울음소리로 변하여
창 틈으로 기어 들어온다
눈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어둠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모세혈관을 따라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더니
온몸이 젖어 버린다
잔가지가 후드득 몸을 턴다
불길은 온 몸을 샅샅이 돌며
구석구석 뱉어내지 못한 단어들을
태운다 푹푹 한 숨을 내 뿜는다
맥 빠진 어깨가 나뭇가지처럼 휘어버린다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은 거리, 홀로 선 나뭇가지 위로
털어 낸 만큼의 눈이 또 쌓이고 있다
꺾이지 않는 한, 쌓이고 털어 내고 또 쌓이고
그렇게 외발로 버텨내야 할 어둠
별조차 모조리 지상으로 내려앉은
오늘 위로 오늘이 쌓이고 또 하나의 오늘이
눈발을 툭툭 털며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있다
출처 : 물앙금시문학회
글쓴이 : 평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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