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복지신문
[스크랩] [정명순] 외출 본문
외출 / 정명순
아침 일찍 서둘러 세수를 하고
뒤적뒤적 옷을 차려입는다
-노인네는 냄새가 나는 겨
손녀딸이 사준 향수 한 방울
겨드랑이에 뿌려 마무리하는 엄마
한 달에 한 번 외출하는 날이다
풍(風)을 맞아 세월의
풍파(風波)에 부서져 이젠
성한 것은 정신 하나 뿐인 까닭에
시간은 더욱 또렷한 아픔이다
하루 종일 지나온 세월의
조각을 맞추지만 언제나 미완의 그림
그래서 내내 한숨뿐인 일흔 둘
큰일을 앞둔 사람처럼 지팡이를 쥔다
계절은 늘 창 밖에서 오고 갔다 하여
빛 부신 햇살 속에 찬바람 가득한 걸
모르는지 엄마는 두꺼운 잠바를 밀어낸다
한달 전에 쬔 한 움큼의 햇살로 버텨온 날들
문을 나서자 깨를 털 듯 햇살에 몸을 맡긴다
우수수 엄마의 몸에서 그늘이 쏟아진다
절룩절룩한 짧은 외출
엄마는 검은 봉지를 꽉 쥐고
방으로 든다 하루 세 번 식후 30분
한 달 분량의 두툼한 약봉지가
향수병 옆에 놓인다
옷자락에 묻어온 가을 바람
휑하니 문틈을 빠져나가고
출처 : 물앙금시문학회
글쓴이 : 평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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