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복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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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몰랐던 어느 부자의 비극
사랑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너무 늙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설사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건 다른 유형의 사랑이다. 사랑은 젊고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아름답고 멋있는 사랑이 이루어진다.
평생 돈 버는 일에만 매여 살던 사람이 있었다. 65세가 되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회의를 느꼈다. 자신이 죽어라고 돈만 벌다 세상을 마치면 너무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위력 앞에서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 앞에서 꼼짝 못하고 지냈다. 그를 겉으로는 매우 존경하고 어렵게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돈 때문이지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와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교회에 많은 헌금도 했고, 사회 사업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그는 허전했다.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그는 우울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주변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매우 열심히 살고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나중에 허탈에 빠지고 권태를 느끼면서 삶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최 회장(가명, 65세)은 그렇다고 정해진 틀 속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살던 삶 속에서 갑자기 무엇을 새롭게 할 수도 없었다. 할 능력도 없었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한들 재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젊었을 때 그에게는 오로지 돈이 전부였다. 돈이 신앙이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도 오로지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건강도 이차적인 문제였다.
최 회장처럼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많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처음 출발은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빠져 남보다 더 열심히 덜 놀고 하다보면 성공하게 되고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돈 때문에 크게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그는 어느 역술가 겸 점을 보는 사람이 소개해 준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젊다고 하지만 그 노인에 비해 젊은 것이지 여자의 나이는 40세였다. 그러나 무려 25살이나 차이가 나는 연하의 여자였다.
최 회장을 잘 아는 역술가는 노인의 상이 호랑이 상이어서 너무 기가 세고 팔자가 센 것이다. 그래서 그 기를 조금 누그러뜨려 놓아야 사업도 더 잘되고 무병장수하에 1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 회장이 이제 사업도 완전히 기반을 닦아 놓았으니 자기 말을 듣고 여자를 만나 가끔 기를 교류하라고 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역술가는 여자를 추천 소개까지 해 주었다. 얼마나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인가? 사주 역학을 풀어 운명을 예언까지 해 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 주고 궁합이 잘 맞는 여자까지 소개해 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만난 여자는 첫결혼에 실패하고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사근사근하고 사교적인 면이 있었고, 얼굴도 예뻤다. 아들을 한 명 데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역술가는 그 여자에게 얼마나 살아가기가 힘들고 외로운가? 아주 성실한 사업가가 있는데 말동무 삼아 서로 의지하고 살면 좋을 것이다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그 여자는 외로웠다. 전남편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어 남자들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혼자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래도 인간은 남자고 여자고 외로움을 탄다. 바쁠 때는 그런대로 지나가지만 살다보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외로워지는 때가 있다. 이때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술가가 추천해주기에 믿고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 회장은 물론 결혼해서 오래 생활해 왔고, 부인도 성실하고 자녀들도 다 장성해서 제 자리를 찾은 상태였다. 부인과 자녀들은 그대로 잘들하고 있었다. 오직 삶에 회의를 느끼고 권태를 느끼고 있는 최 회장만이 문제였다. 최 회장은 살면서 오직 앞만 보고 살았기 때문에 여자를 잘 몰랐다.
술집에 다니면서 그냥 술집종업원들을 상대로 돈을 주고 유희에 젖었을 뿐이었다. 사랑을 알지 못했다. 여자에게 정을 주고 정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런 유형의 사랑을 값싼 센치멘탈리즘으로 치부했다. 경멸했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최 회장은 이번에 알게 된 김 여인(가명, 40세)에게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서로 교감하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여전히 제 버릇을 남 주지는 못했다. 그냥 아파트를 하나 사서 살게 했다. 명의는 김 여인 앞으로 해 놓았지만 권리증을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살림을 차리면서 자신이 집에서 쓰던 냉장고며 침대며 가스렌지 등을 옮겨다 놓았다. 자신의 부인에게는 새 것을 사준다고 생색을 내면서 헌 가구를 애인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생활비를 아주 아껴 쓰라고 하면서 한달에 100만원씩을 주었다. 돈을 버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면서 쓸줄을 전혀 모른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다. 열심히 하고 운대만 맞으면 돈을 벌게 된다. 특별히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연히 장소가 좋아 식당이 잘 돼 떼돈을 번다고 해서 그가 타고난 사업가는 아니다. 정치적 권력에 결탁해서 독재체제하에서 재벌이 되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존경 받을 위대한 사업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이다. 타고나야 한다. 효과적으로 쓸 데 돈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세금을 절세하기 위한 방법으로 불우이웃성금을 내고 세금공제를 받는 사람은 위선자로 비난 받을 소지도 있다.
최 회장은 사업상 필요해서 공무원들을 접대할 필요가 있으면 몇백만원도 쓰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양복은 항상 싸구려만 골라 입었다. 접대에 필요하면 호텔에서 고급식사를 했지만 집에서는 항상 싼 재료를 사다가 먹었다. 그게 그의 철학이었다. 그런 사람인지라 김 여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싸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자신의 철학을 사랑에도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돈을 아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니 훈시했다.
무엇 때문에 돈을 아껴야 하는지? 돈이 많은 사람이 평생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사람이 돈을 계속 아껴야 하는지? 김 여인은 이해가 안 갔다. 입장이 바뀌었으면 김 여인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돈을 많이 벌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렇게 돈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 돈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세월이 갔다. 한 1년이 흘렀다. 김 여인은 참을 수 없었다. 아직은 나이가 창창한데 나이 먹은 영감한테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영업이 끝나면 비슷한 또래의 남자를 만나 술을 마셨다. 술 한잔에 인생의 슬픔이 떠다니고 있었다. 슬픔에 눈물이 나왔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남자가 곁에 꼭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함께 술을 마셔 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돈이 있던 없던 잘 났던 못났던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김 여인은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권리증을 분실했다고 신고해서 새로 발급 받고 매도처분했다. 그리고 이사를 한 후 연락을 끊었다. 외국에 출장을 다녀와서 그 아파트를 찾은 최 회장은 아주 황당했다. 분노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체면이 있는 입장에서 김 여인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할 수도 없었다. 그냥 꿍꿍 앓고 홧병을 얻었다.
나는 최 회장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많이 느꼈다. 정말 사랑하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주고 사랑을 함께 이루어나가야 한다. 사랑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방적인 의견이나 철학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고 어렵고 찾았다고 해도 서로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사랑은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샌가 강물에 떠내려가 두번 다시 찾을 수 없는 아까운 보석이다.
*** 6월 19일 / 가을사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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