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예술세계/마음의창 (238)
서울복지신문
이별여행 정명순 그리움이니 아쉬움이니 절절하게 조여오는 숨결이니 모든 허황한 단어는 빼내기로 한다 그저 겨울 들녘에 서있는 전신주처럼 차갑게, 떨림도 감추기로 한다 단 한 번 보았던 개기 월식 혼자서는 빛을 내 본 적이 없는 달은 해의 먼 배경이었다 가까이 다가설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
세대차이 정명순 상조회에서 조기(弔旗)를 만드는데 서로 엇갈리는 바람에 두 개가 만들어졌다 노인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불길하다고 젊은이들은 뭔 상관이냐고 별 걱정을 다한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쌍초상이 났다 조기 두 개를 동시에 쓸 일이 생겼다 노인들은 두 개 만든 탓이라고 젊은이들..
겨우살이 정명순 홀로 서기도 힘에 부치는 겨울 언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버려진 것들, 안아 올려 겨드랑이에 끼고 말라버린 젖을 물리고 있는 겨울, 자작나무 봄은 멀기만 하다 *겨우살이 : 나무 줄기 속에 뿌리를 박아서 수액을 얻는 기생식물 ========== 참고로 한 번 보세요!
어느 빈집 정명순 양철지붕을 얹은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굳이 담장을 두르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그 집의 담장은 꽃 무리였다 채송화 수선화 백일홍 과꽃 잡풀조차 화초처럼 자라던 마당은 명절처럼 늘 북적거렸다 어쩌다 봄비라도 내려 작은 마당으로 하늘이 내려..
탁류(濁流) /정명순 강경 포구로 가는 길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한 듯 낯익은 자동차를 무작정 쫓아갔다 이미 잊어버린 전화번호처럼 가물가물한 차량번호, 차창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뒷모습은 내가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빠르게 달아났고 좁혀질 줄 모르는 거리는 팽팽하게 늘어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