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예술세계/마음의창 (238)
서울복지신문
홍탁/정명순 썩은 냄새가 혀끝을 타고 올라 코를 쏜다 질근질근 씹을수록 진한 눈물이 난다 사십대 중반, 결혼생활 20년, 아이 둘 지금 남편은 가출 중 울컥울컥 삭은 생목이 올라온다 무덤 같은 두엄 속에서 적당히 썩은 홍어 안주 탓이다 먹기 좋은 정도로 삭는다는 것 기막힌 안주 한 점으로 죽는다..
황태/정명순 펄펄 끓는 황태 국이 시원한 것은 눈보라가 숨어있기 때문이지 수십 고개를 구비 쳐 올라오며 서릿발이 선 옹골진 바람이라야 비로소 황태의 몸 속으로 스밀 수 있지 악, 소리도 못 내고 아가리 꿰인 채 매달려 바닷물에 쓰린 기억 차마 잊혀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심지 한 가닥은 지켜야..
바이러스/정명순 어느 해 여름, 폭염 속에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 독감 바이러스는 모세 혈관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영역을 넓혔다 몸 안에 자리를 잡은 그는 사지를 무력화시키더니 급기야 뇌에까지 치명상을 입혔다 다른 모든 기억을 지웠다 사소한 하루의 일상은 이미 내 것이 아닌 채 오직 그만이 ..
수도꼭지가 울다 정명순 가끔, 화장실 문이 잠기고 수도꼭지가 펑펑 울었다 훌쩍이지 않아도 참으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눈물 붉어진 눈자위 부끄럼처럼 감출 필요 없는 참으로 깔끔한 울음 취기醉氣를 핑계로 응어리를 게워내고 싶은 날이면 수도꼭지가 펑펑 울어 주었다 그렇게 부끄러운 내 눈물을 ..
삼초 정명순 요란스런 예초기 소리가 풀을 베고 있다 조근조근 낫을 들이댈 수조차 없이 잡초넝쿨 우거진 아버지의 무덤 미안해요, 한 마디에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던 그 날처럼, 아버지는 침묵으로 용서해 주실까 얼키설키 병病을 휘감고 마른 장작처럼 침대 위해 놓여있던 아버지, 덥수룩한 머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