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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지신문
외출 / 정명순 아침 일찍 서둘러 세수를 하고 뒤적뒤적 옷을 차려입는다 -노인네는 냄새가 나는 겨 손녀딸이 사준 향수 한 방울 겨드랑이에 뿌려 마무리하는 엄마 한 달에 한 번 외출하는 날이다 풍(風)을 맞아 세월의 풍파(風波)에 부서져 이젠 성한 것은 정신 하나 뿐인 까닭에 시간은 더욱 또렷한 아..
일방통행 -견훤왕릉에서 정명순 일방통행도로에서 무한정 돌아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다 떠나는 것이 너를 위한 것이라는 변명을 남기고 너무 멀리 왔다 질긴 욕망의 매듭 어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네 마음을 차갑게 베어내고 도망쳐오는 길에 진눈깨비 몇 낱 소리 없이 나부꼈다 이젠, 죽어서..
반환점 /정명순 반환점을 돌아 한 발짝 내밀었다 현기증이 난다 정신 없이 달려가 삼백육십도를 돌아오는 첫 걸음, 휘청거리며 중심이 무너진다 이제 돌아갈 길만 남았다 사십 구비를 달려온 길 자유라는 것은 언제나 새장 안의 손바닥만한 여지였을 뿐, 어쩌면 자유란 처음부터 없었다 주어진 조건 ..
새벽강에서 정명순 바람이 한 획을 긋자 안개 속으로 길이 난다 나무가 자란다 후두둑 몸을 털며 산이 하늘로 뜬다 깊은 강이 그려내는 수묵의 세상, 어느 것도 홀로 튀지 않고 모든 것이 또한 또렷이 서는 흑백의 조화, 시작은 무채색이었다
이별여행 정명순 그리움이니 아쉬움이니 절절하게 조여오는 숨결이니 모든 허황한 단어는 빼내기로 한다 그저 겨울 들녘에 서있는 전신주처럼 차갑게, 떨림도 감추기로 한다 단 한 번 보았던 개기 월식 혼자서는 빛을 내 본 적이 없는 달은 해의 먼 배경이었다 가까이 다가설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