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예술세계 (548)
서울복지신문
장마/정명순 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간대 그럼 난 북으로 가야할까 전선이 다시 북상을 하면 나는 또 남으로 내려 가야할까 충남 홍성 백월산 자락, 딱 중간이지 스쳐가기 좋은 길목 그래서 늘 오는 비에 젖고 가는 비에 또 그렇게 젖곤 하지 산허리 오르내리는 길목 어디쯤 자리잡은 탁자 하나 뿐인 주..
호우주의보/정명순 무섭게 다가오는 그대 삼켜버릴 듯이 그리하여 다시는 못 볼 듯이 달려와 나를 휘감는다 딱 한 번 본 순간 운명을 바꿔버린 눈 빛 그 때부터였을까 나는 쩍쩍 갈라지는 갈증의 길을 걸었다 기다림으로 일렁이던 물결은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처럼 부끄러울 것도 설레일 것도 ..
양파/정명순 겹겹이 껍질뿐인 삶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장 깊은 속부터 썩어 나오는 생을 본 적이 있는가 한 켜 한 켜 무너져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겉은 눈부시게 희다 나는 오늘도 하얗게 웃는다
해당화 피는 언덕 -신두리 사구에서 모래성이 덧없다는 말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간 속에 훌훌 먼지가 되어 날아오르는 돌덩이, 그 알갱이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사뿐히 날아 다시 태초를 만들었다 원시의 시작은 한 알의 모래, 가장 보 잘 것 없다는 먼지였을까 한 알의 모래가 동산을 ..
홍탁/정명순 썩은 냄새가 혀끝을 타고 올라 코를 쏜다 질근질근 씹을수록 진한 눈물이 난다 사십대 중반, 결혼생활 20년, 아이 둘 지금 남편은 가출 중 울컥울컥 삭은 생목이 올라온다 무덤 같은 두엄 속에서 적당히 썩은 홍어 안주 탓이다 먹기 좋은 정도로 삭는다는 것 기막힌 안주 한 점으로 죽는다..